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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주의에 잠식되어 버린 현대인 앞에 피워낸 소박한 마법: ‘장송의 프리렌’이 부여하는 일상의 기적 [노종언의 컬처인컬처]
판타지는 흔히 현실의 도피처로 여겨지지만, 동시에 현실의 복잡성을 예리하게 투영하는 거울이 되곤 한다. 최근 대중과 평단 모두의 찬사를 받은 “장송의 프리렌”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용사 일행이 마왕을 물리친 ‘그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이 이질적인 서사는, 화려한 마법 전투나 장대한 영웅담 대신 지극히 고요하고 서정적인 여정을 보여준다.그렇다면 때로는 지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엘프 마법사의 산책 같은 여행기에 이토록 깊이 공감하고 눈물짓는 것일까? 그것은 이 작품의 이면에 ‘현대의 차갑고 비정한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은유가 숨어 있으며, 그 위협 속에서 ‘평범함이라는 일상을 지킨다는 것의 무게’가 얼마나 치열하고 위대한 기적인지를 잔잔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작품 속에서 ‘마족’은 단순히 인간을 해치는 평면적인 악당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성과주의’의 극단적 화신이다. 가장 소름 끼치는 점은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다. 마족에게 언어란 상호 이해의 도구가 아니라, 사냥감의 경계심을 허물고 효율적으로 포식하기 위한 철저한 기만의 도구다. “엄마, 아파”라며 눈물을 흘리지만 정작 ‘어머니’라는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마족의 모습은, 거대 관료제나 기업 시스템이 개인을 착취하기 위해 ‘가족 같은 회사’, ‘열정’과 같은 따뜻한 어휘를 교묘하게 해킹하는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우리가 마족에게서 섬뜩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생태가 우리를 옥죄는 비정한 현실의 시스템과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이다.이러한 마족의 성과주의 시스템과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프리렌이 여행하며 수집하는 ‘사소한 마법’들이다. 프리렌은 목숨을 걸고 잔혹한 마물과 싸운 대가로 ‘꽃밭을 만드는 마법’, ‘냄비의 기름때를 지우는 마법’, ‘차를 맛있게 끓이는 마법’ 등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소박한 마법을 받는다.때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프리렌에게 이 시시한 마법들은 단순한 수집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켜내야 할 소중한 일상을 상징한다.우리는 흔히 평범한 일상을 그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가벼운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그 평범한 행복은 결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마족이라는 비정한 시스템이 끊임없이 우리의 연약하고 무용한 일상을 무가치하다며 파괴하려 들기 때문이다.힘멜과 프리렌이 10년의 모험 동안, 그리고 마왕 토벌 이후에도 짊어진 진짜 무게는 거대한 제국을 세우거나 절대 권력을 쥐는 무거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냄비의 기름때를 닦고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공포를 견뎌내는 ‘평범함의 무게’였다.장송의 프리렌이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남기는 진한 여운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다. 자본과 성과의 논리가 모든 것을 잠식해 들어오는 오늘날, 소박한 일상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돈이 되지 않는 다정함에 기꺼이 나의 헌신과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우리가 현실에서 회복해야 할 궁극적인 마법은 강대한 힘이 아니다. 상처받은 이의 안부를 묻고, 잊혀진 기억의 밭에 다시 꽃을 피워내는 사소한 다정함이다. 평범함이라는 일상의 기적을 지킨다는 것의 그 의미를 껴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차가운 시스템을 넘어 진정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노종언 변호사 (법무법인 존재) ▶저자 소개=노종언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시험 합격 후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구하라,박수홍, 오메가엑스, 선우은숙 사건 등 굵직한 연예계 분쟁을 수행한 엔터테인먼트 분쟁 전문가입니다. 다수의 사건을 수행하며 얻은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엔터테인먼트 법률 이슈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2026.04.10 06:00